하하 보광동 폐가 방송 후 그 곳을 찾아간 루리웹 유저 사건은 무한도전 납량특집에서 하하가 언급했던 서울 보광동 폐가를 루리웹 커뮤니티 사이트의 한 유저가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루리웹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후 벌어진 무서운 이야기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OOO 라는 루리웹 유저 A가 혼자서 보광동 폐가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루리웹 괴담 게시판에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그 후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A는 분명히 그 폐가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나무에는 핏자국이 없었다. 그러자 다른 유저들은 A한테 못 본거 아니야?, 주작하냐? 라는 등의 댓글을 달았고 A는 반박을 했다.
이렇게 끝나나 싶었지만 그 후 이상한 일들은 계속 되었다.
그 나무 사진을 본 루리웹 유저들은 가위에 눌렸다고 호소를 했고 A는 하하가 말했던 꼬마 아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했다.
검정색 꼬마 귀신.
댓글에서 귀신이 마치 링 영화처럼 인터넷을 타고 돌아다니는 건가 라는 소문도 들렸다.
(그런데 실제로 공포 이야기를 하면은 귀신들이 관심을 갖고 몰려온다고는 미신이 있다.)
심지어 한 두명이 아니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겪었다.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A는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했고 해프닝으로 끝나나 싶었다.
지금 그 폐가는 철거가 되어서 놀이터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렇게 루리웹 보광동 폐가 사진 사건은 이렇게 끝나나 싶었지만 후기가 있었다.
음. 우선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지 막막합니다 ㅎㅎ. 저는 정말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옷 정리를 하다가 제가 어릴 적에 쓰던 컴퓨터를 찾았습니다. 엄청난 구형 컴퓨터.
옛날 사진들을 보면서 그땐 이랬구나. 저랬구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즐겨찾기에 루리웹이 있었고 다시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다.
제 이야기가 이렇게 유명 하지는 않겠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고 내리는 이야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 당시 미스테리를 다루는 제작진들에게 인터뷰 전화가 너무 많이 오기도 하고 사진을 보고 난 다음에 가위에 눌려 노이로제에 걸려버린 사람들의 부모님에게도 고소를 하네마네, 이야기가 많이 오가서 저 또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루리웹에 발길을 끊었다.
그 당시 제 나이가 호기심이 왕성하던 20살이었다. 시골 출신에 서울로 막 상경했던 촌뜨기였다.
그리고 오컬트 동호회 회장이었다. 그냥 조촐하게 다음 카페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보광동 흉가에 관한 글을 쓰고 그 일들이 있고난 후, 한 8년정도 되간다.
그 사진을 아직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사진 아직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보기 싫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이야기 중. 몇 가지 부분은 맞고, 몇 가지 부분은 조금 다르다. 100명이 그 사진을 보고 가위에 눌렸다라는 말은 거짓 같다. 사진을 공유했던 사람은 10명 정도인데, 어쩌면 그분들이 또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그 흉가를 가게된 계기는 위에 언급했듯이 제가 운영했던 오컬트 카페에서는 흉가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로 회원들이었고, 주말마다 만나서 흉가를 찾아갔다.
늘봄 가든, 곤지암 정신병원 등. 유명하다는 곳은 거의 많이 가봤다.
흉가를 가는 방식은 이랬다. 제가 가고 싶은 흉가를 찾아가서 외관 사진을 찍어서 카페 게시판에 대략 이렇게 작성을 한다.
‘주말 00시 00카페 앞에 모여서 출발합니다. 회비는 00이고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회원수는 100명 가까이 되었지만, 정작 오는 사람들은 3~4명이 전부였다.
저 또한, 무한도전을 보고 하하가 언급했던 그 흉가를 가기 위해서 사진이 필요했다. 당시 저는 비너스라는 스쿠터가 있어서 그 스쿠터를 타고 흉가를 찾아갔다.
마침내 그 흉가를 찾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데 그날 따라 날이 흐렸다. 사진을 다 찍고나서 저는 알바를 하러 PC방으로 향했다. 한참 알바를 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형이 밖에 비가 많이 온다면서 오토바이를 옮기라고 말해주었다.
옮기는 도중에 제가 촬영했던 사진이 생각이 나서 스쿠터 의자 수납장에 디카를 꺼냈다.
그리고 손님이 많이 빠지는 새벽 시간에 USB로 연결해서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은 총 20장 정도인데 단, 한 장의 사진만 빼고 나머지 사진들은 온통 어린아이가 물감으로 손장난 치듯 색이 번져 있었다. 마치 데칼코마니 처럼…
그래서 무슨 사진인지 구별도 가지 않을정도였다. 그리고 그 문제의 그 사진만이 온전했다. 그 사진은 나무에 피가 흐르고 있던 사진이다.
이후 저는 루리웹 게시판에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여러 댓글들이 올라왔다. 페인트. 물감. 조작. 합성 등의 댓글이었다.
피는 나무 틈 사이에만 흐르고 있어서 누군가가 장난 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다음날 알바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던 시간이 오전 11시 50분이었는데 씻고 잠이 들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제작진들의 연락이었다.
사진을 분석해봤는데 합성은 아니였다는 내용이었다.
아침 일찍 그 흉가를 찾아가서 나무를 확인했는데 피는 이미 지워져 있었고 페인트였다면 바로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때만해도 저는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그 전화를 끊고나서부터다.
진짜 살기싫은 정도였다.
2주동안 잠을 제대로 자 본적이 없었고, 매일 가위에 시달려야만 했다 오죽했으면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기도 하고, 물론 밖에서는 그 귀신이 보이지 않았고 바이킹 타는 기분으로 잠에서 일어났다.
귀신의 모습은 이랬다.
옷은 입지 않았고 머리카락도 없고, 온통 몸이 검은색이었다. 흑인 정도가 아니라 그냥 검은색 그 자체였다. 그리고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구별이 안 갔다. 더도는 이야기는 검은색 꼬마 아이라고 했는데, 여자 성인 정도였다.
그리고 특히나 눈이 엄청 무서웠다. 온통 흰자에 눈동자는 물 묻은 종이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쿡. 하고 찍으면 번지는데 그런 느낌에 눈동자였다.
방식은 항상 이랬다. 제 팔을 붙잡고,
“왜! 왜! 왜! 왜!…”
이런식의 말을 하면서 저를 흔들어댔다. 나중에는 무섭다보다는 그냥 차라리 죽이던지 아니면 어떻게 나를 해주길 바랬다.
그렇게 저도 힘들었지만 사진을 공유했던 사람들도 똑같은 증상을 겪고, 그 분들의 부모님 몇명분들께서 저에게 항의를 했던게 좀 억울하기도 하고 힘들었다.
저는 타지에 와서 혼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그래도 그 분들은 부모님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헛게 보이기도 했다. 당시 제가 살던 원룸 침대에 누우면 현관문이 보이는 구조였는데, 가위가 눌리면 문을 제 가족(엄마, 형. 때에 따라 바뀐다)이 문을 열고, 검은 봉지에 장을 봐와서는 냉장고에 정리를 한다.
그곳도 해맑게 웃으면서…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그 순간부터 제 가족이 아니라 그 귀신이었다.
그리고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저에게 달려와서 또 왜 그랬냐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웃으면서 글을 쓰지만,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났냐고 궁금하실텐데, 서울 살이를 대충 정리를 하고, 고향에 엄청 큰절이 있는데 이름만 말해도 다 알만한 절이다. 방송에도 엄청 많이 나왔다.
거기 절에 들어가서 4개월 정도 지낸 다음에 바로 군대를 갔다.
절에 있으면서 청소 하고 스님들하고 같이 등산을 하면서 견뎌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절에서는 가위에 눌리지 않았고 가끔 악몽을 꾸었다.
이야기는 더 많은데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나중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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